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활용한 이미지
“현장을 돌다 보면 전기조차 끊긴 집 안에서 도움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어르신을 자주 마주합니다. 생명에 위협이 있어도 우리는 그 문을 강제로 열 수 없습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이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 자기 방임이라는 중대한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저장 강박, 알코올 의존, 중증 우울 등 심각한 상태임에도 도움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현행 제도로는 이들을 구조할 방법이 없다.
문제는 이처럼 스스로를 방치한 채 살아가는 사람을 공공이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고통을 넘어,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할 위험으로 확대되고 있다.
▶ “고립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결과”…보고서의 경고
서울시복지재단은 보고서를 통해 사회적 고립이 정신적·신체적 손상, 생애 전환, 가정 폭력, 질병, 은퇴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고립된 사람들은 단절된 삶을 받아들이고, 외부의 도움조차 거부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방임’ 상태는 현재 국내법에서 명확히 규정되지 않고 있다. 노인복지법과 장애인복지법은 타인에 의한 방임만을 학대의 범주로 보며, 당사자가 스스로를 방치하는 경우에는 개입할 근거가 없다.
서울시복지재단은 이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자기 방임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다.
▶ 해외는 ‘자기 방임’을 학대로 규정…한국은 여전히 공백
영국은 자기 방임을 성인 학대의 한 유형으로 인정하고, 관련 기관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법적 체계를 갖췄다. 이에 반해 한국은 현장 복지 인력의 헌신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복지재단은 이러한 제도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정신건강복지법 등 관련 법령에 자기 방임 개념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동시에, 노인보호전문기관과 권익옹호기관이 조사와 개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복지관 실무자들은 입을 모은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처럼 제도적 장치 없이 현장 인력만으로 감당하게 하는 구조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일상의 접촉…‘낙인 없는 돌봄’ 필요
서울시복지재단은 또 다른 해법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낙인 없는 접촉’이다. 고립된 사람을 ‘찾아낸다’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당사자에게 수치심과 방어심을 유발할 수 있다. 짧은 안부 전화, 도서관 소모임, 느슨한 이웃 모임, 지역 내 소소한 참여 기회 확대가 중요한 이유다.
기술을 활용한 복지 시스템도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스마트 플러그, AI 스피커, 돌봄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서울시복지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고령층의 경우 기술보다 ‘사람’과의 연결이 더욱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별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접근이다. 지역 기반의 공동체 활동과 소통, 제도적 개입, 기술적 보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실질적인 고립 해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 조용한 위기, 이제는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할 때
자기 방임은 스스로를 돌볼 여력이 없을 만큼 삶의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복지제도의 부재, 사회의 무관심, 제도의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서울시복지재단의 자료는 우리 사회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고립된 사람에게 단순한 복지를 넘어, 제도와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이제는 기다려서는 안 된다. 고립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함께 고립될 수 있다.
mankyu1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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